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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한 척에 1%만 이익나도 장사 잘한 편" / 조선일보
지난 수년간 중소형 신생 조선소 20여곳이 잇따라 들어선 통영~해남의 남해안 조선(造船) 벨트. 이곳에선 요즘 매일 철강 확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8일 찾은 해남 대한조선 강재(鋼材)팀 사무실. 선박의 건조 일정과 자재 확보 상황이 빼곡히 적혀 있는 커다란 칠판은 작전 상황판 같은 모습이었다.

최근 들어선 중국·일본이 자국 내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수출을 통제하면서, 강재팀은 하루 하루가 비상이다. 회사 관계자는 "계획한 후판(厚板·선박제조용 철강) 확보 일정이 조금만 어긋나도 작업에 차질이 발생한다"며 "웃돈을 주고서라도 국내 철강업체 대리점을 통해 물건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중국 등에서 선박 발주가 급증하면서 조선업계가 사상 최대의 호황을 맞고 있다고 하지만 중소 조선업계는 '철강 원자재난'으로 고통받고 있다. 대불공단에서 차로 30분쯤 떨어진 전남 해남군 대한조선소. 이 회사가 만든 첫 선박인 17만t급 벌크선 'HN-1001호선'은 도색작업이 한창이었다. 예정대로라면 벌써 시험운항에 나서야 하지만 원자재 공급 차질로 작업이 늦어졌다. 일단 5월 말로 예정돼 있던 배 인도 일정을 6월 중순으로 연기하겠다고 노르웨이 선주 측에 통보한 상태이다.

◆남해안 조선벨트 후판 가격 상승으로 신음

지난해 생산을 시작한 경남 사천의 SPP해양조선은 그나마 형편이 나았다. 길이 310m, 너비 86m 규모의 도크에서 5만t급 석유화학제품 운반선 4척이 동시에 건조되고 있었다. 모두 그리스 선주가 주문한 선박이다. 이 중 마무리 작업 중인 2척은 엔진이 탑재되고 이달 하순 진수(進水)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고민이 커지고 있다. 공급난 속에 후판 값이 치솟아 수익률이 크게 하락하고 있다. 후판 값이 10% 오를 때마다 영업이익률은 1.5% 떨어지는데, 올해 후판 가격이 지난해 연초의 2배가 됐다는 것. SPP해양조선 관계자는 "국내 철강사에서 공급을 못 받아 t당 1200달러를 주고 중국산을 쓰고 있다"며 "지난해 초만 해도 중국산 비중이 35%였지만 작년 말부터는 그 비중이 50%를 육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업체의 한 임원은 "최근 인도한 배 1척이 영업이익을 1% 냈는데, 잘 방어했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고 말했다.

◆인력난에 보증난까지

자금 사정도 녹록하지 않다. 조선소 건설로 막대한 투자비가 들어가는 상황에서, 배를 제때에 만들어 인도하지 못하다 보니 자금 회전이 되지 않아 경영난을 겪는 조선소도 나오고 있다.

경영난은 하청업체로 확산되고 있다. 대불공단의 한 선실(船室)제조 협력공장은 이미 완성된 4층 높이의 선실을 납품하지 못한 채 공장 한쪽에 보름째 세워두고 있었다. 거래 조선소가 후판 부족으로 작업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납품 일정이 늦어져 자금 압박이 크다"고 말했다.

인력난과 보증난도 중소 조선소를 옥죄고 있었다. 조선 분야의 기술·설계 인력은 신생 조선소의 잇단 신설로 몸값이 치솟고 있었다. 30년 된 기술자의 연봉은 5500만~7500만원 수준으로 지난해보다 15%나 올랐는데도 인력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현지 업체들은 전했다.

선주로부터 선수금을 받을 때 필요한 은행의 환급 보증도 대형 업체에만 집중되고, 중소 조선소는 외면당하고 있었다. 은행이 보증을 해주지 않아 선수금을 못 받고, 그 때문에 조업 일정이 지연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산업은 지역 경제에 대한 기여도가 큰 만큼, 정부 차원에서 중소 조선소에 대한 금융지원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과잉투자로 상황 더 악화"

중소 조선소의 이 같은 어려운 상황은 과잉투자, 건조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무차별적 수주전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A조선소 관계자는 "중국 철강사에서 공급 제의가 들어오거나 대리점에 물량이 나오면 중소 조선소 간에 치열한 물량 확보전이 벌어진다"며 "후판 가격이 1년 만에 2배까지 뛴 데는 중소 조선소의 책임도 크다"고 말했다. 선박 인도 지연이 속출하는 것도 '우선 수주부터 하고 보자'는 생각에서 생산 능력보다 과도하게 수주를 한 결과 납기를 제때 못 맞추는 경우가 많다.

통영 지역 한 조선소 실무자는 "지역 내에 있는 한 조선소는 지난해 예정대로 인도한 배가 전체의 3분의 1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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