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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신 몸' 고철

‘세계의 공장’ 중국, 올림픽·엑스포 앞두고 고철 싹쓸이 수입

對中수출 2년새 두배 가격도 두배로 껑충
조직폭력배들까지 고철사업에 눈독
교통 표지판·전선 등 ‘쇠붙이 절도’ 잇따라
日도 ‘쇠도둑과의 전쟁’

중국은 철 먹는 하마? 배, 자동차 등의 생산 설비가 급증하고 있는 ‘세계의 공장’ 중국이 한국, 일본 등 주변국들의 고철(古鐵)을 빨아들이고 있다. 게다가 중국 내에선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 엑스포를 앞두고 철 수요량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한 업자들이 고철 확보에 열을 올리면서 각 국의 고철 가격이 치솟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으로 빠져나가는 고철량이 크게 늘면서 고철 가격이 급등하자 전선, 맨홀뚜껑, 심지어 교통표지판이나 남의 집 철제 대문까지 떼어가는 고철 도둑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또한 ‘돈 되는 장사’로 부상한 고철수집에 조폭들이 기웃거리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 25일 오전 11시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고 철 수집 가게 D상회에서 집게차가 흐트 러진 고철더미를 한쪽에 쌓고 있다. 이 고 물상에서 하루에 처리하는 고철 물량은 10여t정도다. 이재준 기자

◆고철 도둑 급증

25일 서울 용두동 고철수집 가게 D상회. 50평 마당에 고철이 4m 높이로 쌓여 작은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마당 가운데에서는 집게 차가 “우웅” 소리를 내며, 흩어져있는 고철을 한 곳에 모았다. “중국이 고철 빨아들이는 블랙홀입니다. 몇 년 사이에 고철값이 2배 뛰었어요. (고철은) 들어오기만 하면 그대로 돈이라니까요.”

윤기섭(54) 사장은 리어카에 고철을 싣고 온 사람과 가격을 흥정했다. 30분 동안에만 3명이 고철을 넘기러 D상회를 찾아왔다.

고철 값이 치솟자 고철을 훔치는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올해 지하철 분당선에서만 스테인리스 하수구 덮개가 70개나 도난당했다. 노숙자들이 떼어다 고물상에 팔아넘긴 것이다. 광주광역시에서는 지난 17일부터 사흘 사이 외곽지대 농수로에 있는 U자형 수로덮개 60여 개가 사라졌다. 지난달에는 안동, 의성 등 경북 북부지역에서 전선을 무려 120㎞(시가 5억1000만원)나 훔친 일당 4명이 붙잡혔고, 제주 서귀포에서는 횡단보도에서 교통 표지판(12만원 상당)을 떼어낸 박모(35)씨가 지난달 구속됐다. 이 밖에 원룸과 다세대 주택에서 전기단자함 뚜껑만 훔친 사건, 철제 대문을 뜯어간 사건 등이 속출하고 있다. 예술품마저도 쇠붙이 도둑에게 수난을 당하고 있다. 2002년 부산 비엔날레 바다미술제에 출품된 이후 길거리에 전시됐던 한 작품이 두 동강난 채 발견됐다. 작품에서 쇠붙이 부분을 떼어내 훔쳐간 것이다.

조직폭력배들도 고철사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지난 9일 수도권 일대 아파트 건설현장 수십 곳에서 12억대 고철 수거권(收去權)을 강제로 따낸 조폭 40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S고철업체 김모(49) 대표는 “아파트 철거 시 1개 동(棟)의 고철수익이 300만~500만원에 달한다”며 “입찰 시 고물업체끼리 과당경쟁을 펼치다 보니 손해 보면서까지 입찰권을 따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고철 도둑과의 전쟁 선포

일본도 고철 도둑 잡기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달 일본 미야자키현 노베오카시(市)에서는 도로에 설치된 철제 가드레일 27개가 도난당했다. 이 가드레일은 1개 길이가 4m로 피해액이 12만엔(약 96만원)에 달했다. 일본 경찰청은 지난해 일본 전역에서 발생한 쇠붙이 절도가 약 5700건, 피해액은 약 20억엔(약 16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급기야 일본 경찰청은 올 들어 ‘고철 도둑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한국철강협회 고철 담당 서승교 과장은 “중국의 철강 수요증가가 국제 고철값을 끌어올리고 있어 고철품귀 현상은 세계적인 추세”라고 말했다.

◆‘고철 블랙홀’ 중국

국내 고철가격은 2001년 1?당 93.8달러에서 올해 276.9달러(약 26만원)로 세 배 가량 뛰었다. 시중 고물상에서 사들이는 고철 값도 2004년 1㎏당 150원 수준에서 올해는 250~300원 선으로 올랐다. 우리나라에서 중국으로 수출되는 고철량도 2004년 11만8187?에서 지난해 21만6376만t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삼성증권 철강금속 애널리스트 김경중씨는 “중국의 공업생산시설이 2002년부터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기본 원자재인 철에 대한 수요도 폭증했다”면서 “중국 경제가 급랭하지 않는 한 이런 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국의 조강(粗鋼·철광석이나 고철을 녹여 만든 강철) 생산은 2001년 1억5090만t이었지만 지난해에는 세 배에 가까운 4억1878만t에 달했다. 그만큼 조강에 필요한 고철 수요도 늘어난 것이다. ㈜대지스틸 성명준 대표는 “중국은 올림픽과 엑스포에 필요한 시설을 짓기 위해 고철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이 때문에 중국 내에선 고철 사재기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손진석 기자 aura@chosun.com
이재준 기자 promejun@chosun.com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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