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철값이 '금값'이다. 폐기물로 취급받던 고철이 국제가격 급등으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그런 만큼 고철을 원료로 철근과 형강을 생산해는 국내 전기로 업체들은 하루하루 힘든 '고철확보 전쟁'을 펼치고 있다. 연쇄적인 철강완제품 가격상승도 우려된다. 29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산 수입 철스크랩(고철) 가격은 톤당 360달러(HMS넘버1 기준)를 돌파, 사상 최고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일부 품목은 380달러선도 위협하고 있다. 가격만 보면 '고철대란'이 벌어졌던 2004년(톤당 340달러선)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2000년만 해도 국제 고철가는 110달러에도 못 미쳤다.
수입고철보다 10% 정도 낮은 국내 고철가도 덩달아 톤당 32만원을 돌파했다. 지난해와 비교해도 30%이상 높은 가격. 이에 따라 전기로 가동을 위해 필요한 고철의 70%를 국내, 30%를 해외에서 조달하는 현대제철 동국제강 한국철강 대한제강 등 국내 전기로 업체들은 극심한 물량난을 겪고 있다.
고철값이 이렇게 비싸진 가장 큰 이유는 세계 최대 공급국인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 국가들이 수출물량을 크게 줄였기 때문. 그 동안 개점휴업 상태였던 러시아내 전기로 업체들이 오일달러가 넘쳐나게 되자 공장가동을 재개했고, 그러다 보니 국내 고철수요를 감당하기에도 벅차게 된 것이다. 또 다른 고철 수출국이었던 미국과 일본도 철강경기가 호조를 보이면서 내부 수요에 우선적으로 충당하게 된 것이다.
이에 비해 세계 3대 고철 수입국인 터키와 중국, 우리나라의 고철수요는 계속 늘고 있다. 특히 전세계적으로 기후변화협약 등에 따라 고로 보다는, 상대적으로 환경오염이 적은 전기로 사용이 증가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수급 불균형에 한 몫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불법구조변경 화물차인 일명 '방통차' 단속은 고철값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단속을 꺼린 화물차주 및 기사들이 아예 운행을 하지 않은 것. 한 전기로 업체 관계자는 "고철 운반차는 운행 중 철조각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화물칸의 벽을 올린다"며 "다행히 정부도 이런 실정을 이해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지만 이 과정에서 전기로 업체들은 국내 고철공급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발을 동동 굴러야만 했다"고 말했다.
상황은 앞으로도 별로 나아질 것 같다. 김경중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에는 일본과 아시아 지역의 전기로 증설 움직임까지 가세해 국제 고철가가 더욱 불안한 형국"이라며 "적어도 내년까진 높은 수준의 고철 가격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철강업체 관계자도 "2004년 고철대란 당시에는 러시아 물량이 나오며 문제가 해결됐었지만 지금은 그런 물량마저 없는 상태"라며 "고철 가격 강세가 계속 이어질 경우 전반적 철강가격 상승과 함께 매점매석 같은 고철파동까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