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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노무현정권 때리기 그만하고...
  • [송희영 칼럼] 노무현 정권 때리기는 그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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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인기가 바닥이다 보니 뭐든 안 풀리면 대통령 탓이고, 청와대 386과 열린우리당의 실패로 귀착된다. 실패 사례 중 대표적인 것은 물론 경제다. 성장률, 실업자, 실물투자 같은 중요한 경제 성적표가 역대 정권 중 최하위권인데다, 서민의 살림살이까지 빠듯해졌다는 여론 조사를 보면 이 정권의 경제정책은 최악이었다고 판정 내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냉정히 따지면 노무현 정권에만 모든 책임을 돌리기는 힘든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청년 실업자가 급증한 시기는 이 정권과 일치하지만 과거 노태우·김영삼 정권 때부터 잉태된 것이 이제 와서 통계로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자리 창출을 주도해왔던 제조업이 점차 시들해지면서 고졸, 대졸자들이 갈 곳은 급격히 사라졌다. 기업들이 중국으로, 베트남으로 공장 이전을 하기 시작한 탈출 현상은 이미 노태우 정권 때부터 뚜렷했었다.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신종 산업을 키우지 못한 죄를 유독 노무현 정권에 몽땅 뒤집어 씌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부동산 값을 잡지 못한 실패는 어디 이 정권뿐인가. 돌이켜보면 분당·일산에 일거에 200만호를 공급했던 노태우 정권 때 일시적으로 집값이 조용했고, IMF위기 같은 침체 국면에서나 집값이 안정되었을 뿐이다. 나머지 대부분의 부동산경기 사이클은 상승 국면이었다.

    세금 폭탄 투하, 무분별한 지역 투자 계획 살포 같은 어설픈 대응으로 부동산 값을 왜곡한 죄가 가볍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로지 이 정권의 부동산 정책이 가장 실패했다고 공박하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다.

    최근 몇년 간 집값이 오른 이유는 오히려 김대중 정권에서 찾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IMF 충격 이후 경제를 죽음의 계곡에서 구해내려고 엄청난 통화를 증발(增發)하고, 가계대출, 부동산 담보대출을 늘렸다. 여기에 외국인들의 투자까지 겹쳐 부동산 가격에 불을 때왔다. 청와대도 이런 억울한 측면을 강조하려 들지만 인심 잃은 정권에게 돌아가는 메아리는 ‘또 남 탓 타령이냐’는 면박뿐이다.

    양극화도 한국 경제가 글로벌 개방경제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서 불가피하게 가속화되고 있다. 시장에 승자 싹쓸이(winner-take-all) 현상이 자리잡으면서 체중 때문에 덜 먹으려고 애쓰는 계층과 다음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계층 간의 격차는 더욱 분명해졌다. 이 또한 지난 10년 사이 점차 심각해진 현상이고, 노무현 정권의 책임이라고만 말하기 어렵다.

    한국은 그 동안 구조조정에 실패했다. 경공업-중공업 시대를 거쳐 정보화시대를 맞았으나 몇 개 벤처기업이 등장했을 뿐, 해마다 50만개 전후의 일자리를 제공해 줄 신천지를 개척하지 못했다. 국내 소비시장이 폭발하지 못해 아직도 경제성장을 수출과 수입에 주로 의지하고 있다.

    우리는 높은 산 한두 개를 넘어서면 선진국으로 갈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로키산맥과 같은 거대한 장벽을 넘어서야 비로소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엄청난 과업은 한 정권이 단칼에 끝낼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를 마치 노무현 정권이 해낼 것이라고 기대했던 유권자는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이 정권의 출범 당시 이런 기대를 도무지 하지 않았던 세력일수록 오히려 경제 실패에 비판적이다.

    그렇다고 노무현 대통령과 이 정권의 정책 책임자들에게 무죄(無罪)를 선고하거나 사면(赦免)하자는 건 결코 아니다. 시장통 구석에서 철물점이나 꾸리면 적당할 사람들에게 글로벌 시장에서 생존해야 할 대기업의 경영을 맡긴 꼴이었으니, 나라 경제가 뒤죽박죽 되었다. 그 죗값은 두고두고 치러야 할 것이다.

    다만 새 정권 출범을 1년 앞둔 시점에서 노무현 정권에 몰매를 때리기에 몰두하기보다는 우리 경제 상황을 좀더 냉정하게 분석해봐야 한다. 이 정권의 실패는 무엇이고, 이 정권과는 관련 없는 근본적인 숙제는 무엇인지 공정하게 정리해야 한다.

    대선주자들과 경제계가 이런 객관적인 평가 작업을 진행한 후 새로운 경제 설계도를 작성한다면 신(新)정권 탄생과 더불어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 노무현 정권 때리기로 1년을 보낸다면 다음 정권도 또 하나의 악몽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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